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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와 호박 넝쿨

by 홍종흡 2019. 8. 29.



할배와 호박 넝쿨                        -홍종흡-


기운 없어 축 처진 잎들- 배가 고픈 게로 구나?

영양제 비료라도 줄까?

장맛비 내린 지도 오래되어 배도 고프겠지

근데- 꽃 피는 거 잊어버렸어?

겨우 두 송이 피고선 애호박 하나 달렸는데

할멈이 더 클 때까지 기다리다가

한 보름 지나자 호박 찌개를 끓였지 뭐니

미안해-

 

더는 꽃도 피지 않고 호박도 달리지 않으니

너의 넝쿨을 거둘까 해

네 옆에 고추도 팥도 모두 아우성이야

너의 넝쿨이 뻗어와서 목을 졸라매니 숨도 못 쉬겠대

고추는 탄저병 들어 죽어가면서도

오히려 너의 넝쿨에 기대어 숨 쉬지만

팥은 너의 넝쿨과 넓은 잎에 짓눌려 꽃도 못 피고 있어

아쉽지만 너의 넝쿨을 거둬야 할까 봐


사실은 말이야~ 너의 꽃을 바라보면 참 정겨워

꼭 우리 할멈 웃는 모습 닮았거든

할멈 시집올 때는 하얀 장미꽃 같았는데

긴 세월 힘겹게 살아서 그런지

들판에 피어난 해바라기를 닮아가더니

요즘에는 부쩍 더 늙어 호박넝쿨처럼

누구라도 잡지 않고는 못 다니는

호박꽃이 되었어


아침마다 환하게 웃는 할멈 얼굴에는

세상 근심 걱정 하나도 보이지 않는가 봐

비가와도 바람이 불어도

주름진 얼굴에는 늘 웃음꽃이 피더군

노-란 모습으로 내게 다가올 때면

호박넝쿨 꼭 너를 닮았어

그래서 너의 넝쿨을 걷으려니

할멈 행복을 걷는 것 같아 마음이 좀 안좋아


오늘-

애호박 달린 꽃이 하나 더 피었는데 어쩌지?

그래도 너의 넝쿨을 거둘까?

너의 넝쿨이 없으면 할멈이 더 외로워할까~?

가여운 호박꽃 우리 할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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