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굴렁쇠 -홍종흡
나는 태어날 때
굴렁쇠를 갖고 태어났다
내 운명이 새겨진 것도 모르고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다가
철들 무렵에 너무 힘겨워
나에게 맞는 굴렁쇠로 바꿨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굴려도
도랑에 빠지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내 삶의 굴렁쇠
얼마나 많이 넘어졌던가-
다시 세워 굴리길 수십수백 번
끝내 황혼빛 아래 서버린 굴렁쇠
나보다 먼저 와있는 굴렁쇠들
그 찬란하던 빛들은 사라졌는가
주인도 없이 황혼빛에 서있다
나의 굴렁쇠도 그렇게 선 채로
다시는 구를 수 없게 될 거라 해도
아무런 아쉬움도 미련도 없다
굴렁쇠에 새겨진 내 이름만이라도
아주 지워지지 않길 소망하는데
나의 욕심이 너무 과한 걸까
황혼빛 아래 힘겹게 서있는
내 인생의 굴렁쇠
나의 굴렁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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