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바람 -홍종흡-
고가 차도 밑에는
일 년 내내 바람이 분다
꽃잎이 피어날 때는
사정없이 차갑게 때리던 바람이
오월로 들어서자
청보리 수염에 금빛 물들이고
고가 밑 늙은이들 모인 자리에
초여름 뜨거운 바람 불어대니
핏대 오른 늙은이 장기판 두드리고
판 돈 잃은 한숨 소리만 들린다
이미 다 사그라진 인생인데
무슨 낙이 있고 미련이 있을까
고가 밑에 모인 얼굴들 중에는
어제 왔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오월 바람을 따라갔을까
내일은 또 어느 얼굴이 따라가려나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 오월에
바람 따라갈 수만 있다면야~
해질 무렵- 기다리는 이도 없는 데
그래도 집이라고
쪽방 찾아 들어가는 늙은 얼굴들
창문 너머로 희끗희끗 어른거린다
다시 아침이 밝아오면
오월 바람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고가 밑으로 달려와
장기판 위에 얼굴 하나를 찾는다
고가 넘어 함께 갈
삶에 지쳐버린 애절한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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