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질고 착한 소의 눈 -홍종흡-
사람들은 대개 상대방을 <님>이라 높여 부른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짐승 만도 못한 사람이 꽤 있다.
짐승은 살기 위해서만 먹을 것을 놓고 싸우지만
인간들은 배 터질 만큼 먹을 것을 숨겨 놓고서도
서로 속이고 배신하고 더 가지려고 싸운다
그러다가도 때 묻지 않은 고고한 인간인 것처럼
상대방을 무슨<님>이라 높여 부른다.
가식이지만 높여 부르지 않았다가는 욕을 들으니
어차피 짐승 같은 것들에게도 <님>을 부쳐주는데
배신하지 않는 동물에게 <님>을 못 부칠 이유가 없다
그럼~ 연습 삼아 <님> 자를 붙여서 한 번 불러보자
고양이 님~! 개 님~!, 돼지 님~! 소 님~!
숙달되지 않아서인지 어색함은 어쩔 수 없다
옛날부터 짐승만도 못한 인간은 <놈>이라 했다
이번에도 한 번 <놈>이라 부쳐서 불러보자
이 도둑놈~! 돼지 같은 놈~! 개만도 못한 놈~!
어색하지도 이상하지도 않고 아주 자연스럽다
올 해는 신축년 소의 해란다
올 일 년 만이라도 인간을 위해 헌신하는 소에게
<님> 자를 붙여서 불러주면 어떨까
길들여져 반려자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소
가득 찬 물동이 같은 소의 눈을 들여다보면
조용히 나에게 다가와 눈으로 말해준다
밥 먹었니? 아픈 데는 없니? 숙제는 다 했니?
엄마 말 잘 들어~ 엄마가 속상해하신다~!
말하는 그 눈빛이 참으로 어질고 순박하다
난 어릴 적에도 소를 사람처럼 생각했다
만약에 우리 소가 사람으로 태어났더라면
난 <소 삼촌~!>이렇게 불렀을 것이다
사료보다 훨씬 더 풀을 좋아하는 우리네 소
적게나마 이렇게라도 보은 하고 싶다
<소 삼촌~! 올여름에는 삼촌이 좋아하는
바랭이 풀을 한 짐 가득 베어다 줄게~!>
어질고 착한 소의 눈처럼
올 해도 잔병치례 없는 행복한 소의 해
그런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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