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물 -홍종흡-
아주 먼 ㅡ 옛날에 소작농이셨던 아버지는
가물어 타들어가는 채소밭을 내려다보며
다섯 살 된 나에게 하느님이 어딨는지 아니?
밭머리를 삽으로 쿡쿡 찍으며
여기일까 저기일까~? 나를 바라보기에
나는 손가락으로 <여기~!> 했더니
아버지는 히 웃으며 그곳을 열심히 팠는데
하느님은 보이지 않고
사막의 마른땅처럼 모래만 가득 나오자
어린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그저 웃었다
<좀 아래쪽으로 내려가 파볼까?>
구슬땀에 범벅이 되어 힘겹게 파내려가니
그곳에서 삐죽 얼굴을 내미는 게 보였다
분명 하느님이었다
아버지는 얼른 맥고모자를 벗어 넙죽 절 하고
<고맙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느님~!
어서~ 어서어서 나오세요~!>
파낸 구덩이에 한자 반정도 샘물이 고이자
미군 화이바로 만든 거름 주던 바가지로
샘물을 퍼 내 마른 밭고랑에 흘려보내길
해가 저물 때까지 열심히 퍼 내고는
<땀 흘려 절박한 심정으로 찾지 않으면
하느님은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단다
하느님 덕분에 이 가뭄을 이겨내게 됐구나~!>
너무나도 평범하게 살으셨는데도
그 평범한 높이가 하늘처럼 높았던 아버지
지금은 하느님을 대신하여
이 맛 좋은 샘물을 나에게 보내주시는가 보다
하느님과 더불어 내려주시는 물이기에
오늘도 나는 <아버지의 물>이라 여기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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