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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생일날

by 홍종흡 2023. 6. 29.

 

슬픈 생일날                                             -홍종흡-

 

이바지 주문 약속시간이 몇 시지?

낮 12시까지만 배달하면 돼요.

일요일인데 시장에 보자기 파는 곳이 있을까 몰라

당신은 차에 있어 ㅡ 내가 들어가 사 올 께

 

급하게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큰소리로

아줌마!  이바지 싸는 큰 보자기 있어요?

함 싸는 큰 보자기가 있는데 ㅡ 보실래요?

잘됐네요. 한 장 주세요.

 

보자기 봉투를 들고 뛰어오자 할멈이

보자기가 있대요?

응 여기 한 장 샀어

어서 가서 이바지 상자를 싸서 갖다 줍시다.

 

가게에 도착하여 봉투를 열어보고서는 할멈이 소리쳤다

이 보자기는 함 싸는 보자기잖아요?

이바지상자 싸기에는 너무 커서 안 되겠어요.

가서 바꿔와야겠어요

 

(나도 함께 갈려고 쫓아 나갔는데

할멈이 혼자서 급하게 자동차를 몰고 시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할멈은 어느 집에서 샀는지 알 수 없기에

가게에 있는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골목 안으로 쭈욱 들어가면 아저씨네 가게를 지나서

왼쪽에 아줌마가 한복대여, 잡화를 파는 데가 있어!

내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썅~! 얼른 따라 나왔어야지~! 개새끼ㅡ!

 

할멈의 앙칼진 목소리를 듣는 순간 멍-하니 

한참을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귓속에서 재방송 들리 듯 계속

<개새끼ㅡ!>  소리가 쟁쟁 들려온다

 

맞붙어 나도 할멈에게 욕하지 않은 게 참 다행이다.

그 시간부터 내 입은 얼어붙어 말없이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생일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소름이 돋을 것 같아

할멈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할멈은 가난한 내게 시집온 게 늘 불만족하여

평소에도 남편인 나를 가난한 집 개처럼 생각했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불시에 <개새끼ㅡ!> 소리가 나올 리 없다.

생일날 아침 미역국이 너무 맛이 없어 먹을 수가 없었지만

 

<개새끼>에게 개밥을 줬겠다 싶어 말없이 밥 한술 말아서

국 한술 입에 넣고 냉수 한 모금씪 마시면서 억지로 먹었다

평소에는 늘 <잘 먹었어> 치하했는데 오늘은 하지 않았다.

생일날 이런 대접을 받으려고 여태껏 땀 흘려 살아왔나~!

 

<개새끼>가 된 나는 죽으면 개들의 영혼과 함께 살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거울 앞에서 빙긋이 웃었다.

만약에 사람들 영혼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게 된다면

마귀 같은 할멈의 영혼을 다시 만날지도 모르니까~.

 

내 생일을 축하해 주려고 서울에서 내려온 딸에게 부탁했다.

나 죽으면 절대로 엄마와 합장하지 말고 화장하여

커다란 떡갈나무 밑에 뿌려주고 큰 가지에는 

내가 즐겨 연주하던 빨간색 아코디언을 걸어주렴.

 

그리고 나의 시 <나의 수목장 2013.10.7>을 나무에 걸어다오.

딸의 눈가에서 긴 장마 빗물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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