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새끼 -홍종흡-
<설기정 떡방> 조그만 시골에 떡집 이름이다.
할멈 이름이 <白雪妓> 주인영감 이름이 <片基亭>이라서
떡집 이름을 <설기정 떡방>으로 연지 근 삼십 년이 돼간다.
엊그제 <이바지 떡> 주문받은 게 문득 생각난 기정영감
설기할멈 ㅡ 이바지 떡 약속시간이 몇 시지?
낮 12시까지만 배달하면 돼요. 근데 ㅡ 오늘 일요일인데
시장에 보자기 파는 곳이 있을까~? 차가 시장에 도착하자
기정영감이, 당신은 차에 있어ㅡ 내가 들어가 사 올 께
급하게 주단가게에 들어선 기정영감은 큰소리로
아줌마! 이바지상자 싸는 큰 보자기 있어요?
함 싸는 큰 보자기는 있는데 ㅡ 보실래요?
아줌마가 보여주는 보자기를 보고ㅡ 됐네요~. 한 장 주세요.
보자기 넣은 봉투를 들고 뛰어오는 기정영감을 향해 설기할멈이
보자기가 있대요?
응 ㅡ 여기 한 장 샀어. 어서 가 이바지상자를 싸서 갖다 줍시다.
시간은 벌써 오전 11시를 넘었다.
가게에 들어와 보자기를 펼쳐 본 설기할멈이 소리쳤다
이 보자기는 함 싸는 보자기잖아요?
이바지상자 싸는 보자기로는 너무 커서 안 되겠어ㅡ!
가서 바꿔와야겠어요.
급하게 할멈이 차에 오르자 기정영감도 쫓아 나가는데
할멈이 혼자서 자동차를 몰아 시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할멈은 영감이 어느 집에서 샀는지 알 수 없기에
화가 치밀어 올라 가게에 혼자 있는 영감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장골목 안으로 쭈욱 들어가ㅡ 아저씨네 가게를 지나서
왼쪽에 주단, 한복대여, 잡화를 파는 데가 있어!
기정영감의 급한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디라고? 썅~! 얼른 따라 나왔어야지~! 개새끼~!
설기할멈의 앙칼진 목소리가 확성기처럼 터져 나왔다.
순간 기정영감은 멍~하니 한참을 전화기를 들고 서있었다.
귓속에서 선거유세 재방송 들리 듯, 계속 설기할멈의
<개새끼~!> 소리가 쟁쟁 들려왔다.
영감은 할멈에게 똑같이 욕하지 않은 게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 시간부터 영감의 입은 얼어붙어 말없이 하루를 보냈고
다음날 생일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설기할멈을 마주하면
소름이 돋을 것 같아 할멈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았다.
설기할멈은 가난한 기정영감에게 시집온 게 늘 불만이었다.
평소에도 남편인 기정영감을 가난한 집 개처럼 막대했다.
늘 그랬었기에 오늘도 <개새끼~!> 소리가 불시에 튀어나왔다.
영감은 생일날 아침 미역국이 너무 맛없어 먹을 수 없었지만
<개새끼>에게 개밥을 줬으려니 싶어 말없이 밥 한술 말아서
국 한술 입에 넣고 냉수 한 모금씪 마시면서 억지로 먹었다.
평소에는 늘 <잘 먹었어~!> 치하했지만 오늘은 하지 않았다.
생일날 이런 대접을 받으려고 여태껏 땀 흘려 살아왔나~싶다.
<개새끼>가 된 기정영감은 죽으면 개들의 영혼과 살 것 같은ㅡ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거울 앞에 서서 혼자 빙긋이 웃었다.
만약에 사람들 영혼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게 된다면ㅡ
마귀 같은 할멈의 영혼을 다시 만날까 두려워 고개를 저었다.
생일축하해 주려 서울에서 내려온 딸에게 영감은 부탁했다.
나 죽으면 절대로 네 엄마와 합장하지 말고 화장하여
뒷산에 있는 커다란 떡갈나무 밑에 뿌려주고 큰 가지에는
내가 즐겨 연주하던 빨간색 아코디언을 걸어주렴.
그리고 나의 시 <나의 수목장(13.10.07)>을 나무에 걸어다오.
딸의 눈가에서는 어느새 장맛비처럼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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