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글305 작은 암자 작은 암자 -홍종흡- 산 모퉁이 둥글게 돌아 올라가면 백개도 넘을 법당 안에 꽉 들어찬 이름표들 밤새도록 누구와 이야기를 할까- 앞에 놓인 촛불들이 대답 하 듯 하늘거린다 어릴 적 어느 날 할머니가 아주 먼 곳으로 돌아가셨다기에 어린 마음에 언뜻 생각했다 할머니가 산 모퉁이를 돌아가셨구나 하고- 한평생 살다가 힘들어 더는 살 수 없을 때 쉴 곳 없어 돌아가는 곳이 그곳이라며 모두들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으면 산모퉁이를 돌아 그곳으로 올라간단다 나도 할머니가 보고 싶어 올라가 봤지만 할머니는 볼 수없어 늘 동자승과 놀았다 그곳은 이다음에 나도 올라가는 곳이란다 어제 만난 듯 반겨주는 수많은 이름표들 낯설지 않은 고향에 작은 암자- 2020. 11. 15.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돌담길 -홍종흡- 드넓은 경운궁의 한 켠이 뜯겨나가고 정문도 사라지니 동쪽의 작은문 을 이라 현판 붙여 정문이라 했다네 황제 퇴임시 업적을 치하하여 궁호로 이라 칭송했는데 어쩌다 마져도 덕수궁이라 하는지 지금이라도 경운궁으로 다시 바꾸고 싶네 황제 친필인 동문의 옛 현판 을 지금의 현판과 바꿔 붙이면 장차 이 나라의 어린이들이 올바르게 배울 텐데 현판을 볼 때마다 씁쓸한 마음이네 젊은 날에 거닐던 돌담길은 아직도 그대로인데 겨울바람만이 낙엽을 쓸고 가네- 2020. 11. 9.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돌담길 -홍종흡- 드넓은 경운궁의 한 켠이 뜯겨나가고 정문도 사라지니 동쪽의 작은문 을 이라 현판 붙여 정문이라 했다네 황제 퇴임시 업적을 치하하여 궁호로 이라 칭송했는데 어쩌다 마져도 덕수궁이라 하는지 지금이라도 경운궁으로 다시 바꾸고 싶네 황제 친필인 동문의 옛 현판 을 지금의 현판과 바꿔 붙이면 장차 이 나라의 어린이들이 올바르게 배울 텐데 현판을 볼 때마다 씁쓸한 마음이네 젊은 날에 거닐던 돌담길은 아직도 그대로인데 겨울바람만이 낙엽을 쓸고 가네- 2020. 11. 9. 누나의 홍시 누나의 홍시 -홍종흡- 책 보자기 등에 메고 교문을 나와 필통 소리 딸랑딸랑 달려온 나에게 누나가 기다린 듯 내 민 홍시 하나 금세 손바닥 위에서 터질 것 같아 얼른 한 입 크게 물어 꿀꺽 삼키고 두닙 세입 후루룩 빨아들여마시니 급하게 팥죽 퍼먹은 개구쟁이처럼 감 물이 사방 흘러 번진 내 입술을 행주치마자락 접어 닦아주던 누나 홍시 팔아 그림물감 또 사 줄 테니 예쁘게 누나 얼굴 좀 그려보라고 홍시처럼 복스럽게 웃어주던 누나 올 가을에는 잊지 말고 누나 묘소에 잘 익은 홍시 하나 놓고 와야겠다 하늘나라에 가서 맛이나 봤으려나 홍시처럼 고운 얼굴 우리 누나- 2020. 10. 29. 말이 멍석 말이 멍석 -홍종흡- 말이 멍석을 굴려 펴는 늙은 손 혼자서 중얼거린다 긴 장마에 참깨마저도 영글지 않았으니 털면 겨우 서너 말 정도밖에 안될 거야 이제는 이 멍석이 무거워 힘에 부치네 그래도 장가갈 때 할아버지가 내 준 건데 오래되어서 그런지 구멍이 많이 생겼네 구멍 몇 개는 꿰매 막고 깨를 털어야겠어 신작로에 재작년 그러께 생긴 방앗간 이름이 "삼천리 떡방앗간"이래 기름은 잘 짜주려나 한 서른 병 나오면 딸네 세병 주고 다섯 병은 팔아서 할멈 신발 사주고 두병은 팔아서 손녀딸 강아지 사주고 열병은 팔아서 멍석을 새로 살까 봐 새로 사면 앞으로 몇 년이나 쓰게 될까 그래도 한 오 년은 잘 쓰고 가야 할 텐데 나 가고 나면 할멈이 멍석을 잘 다루려나 너무 힘들어 깨 농사는 하지말래야겠어~. 2020. 10. 14. 추석빔 고무신 추석빔 고무신 -홍종흡- 시골 간이역에도 가을바람이 분다 며칠 전부터 엄마를 기다린 사내아이 오늘도 기다리다 들어간다 새 고무신 사 온다던 엄마는 오지 않고 막차 떠난 간이역에서 서성이다가 쓸쓸히 돌아가는 열세 살 사내아이 추석에는 꼭 새 신을 신고 싶은 마음에 꿈속을 달려 다시 역에서 기다리는데 등 뒤에서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 아이 앞에 엄마가 내민 밤색 고무신 아이는 코를 눌러보고 귀에 대보고 즐거운 듯 노래를 부르다가 싸늘한 아침 바람에 눈을 뜨고선 중얼거리며 일어나 무엇을 찾는다 내 고무신~! 내 고무신~! 추석날 아침 창가에 햇살이 밝아도 사내아이에게는 그저 서운한 날일 뿐 물 새는 고무신을 다시 들여다본다 바람에 날리던 머리카락이 어느덧 무서리 내린 듯 하얘진 사내아이가 이제 일흔다섯 번째 추.. 2020. 10. 1. 차 한잔 하세 차 한잔 하세 -홍종흡- 이 차 한잔에는 나의 진심이 담겨있네 어서 자리에서 일어나시게 젊은 날의 원대한 목표를 이제 와서 누구에게 미루려 하는가 힘내시게 친구 운이 없어 당뇨에 걸렸다 여기게 발가락이 서너 개 떨어져 나가고 뼈 마디가 닳아 소리가 나도 정신은 멀쩡하지 않은가 자- 차 한잔 하세~! 이 차 한잔에는 나의 사랑과 자네를 향한 가족들의 애틋한 염원이 담겨있네 이제 그만 털고 일어나시게 나라를 위해 할 일이 너무 많네 이 나라는 아직도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필요하다네 자네 같은 애국자가 필요하다네 자- 차 한잔 하세~! 2020. 9. 20. 차 한잔 하세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0. 9. 18. 하늘 거울 하늘 거울 -홍종흡 - 하늘은 내 삶의 거울이다 거울은 빛으로 내게 보여준다 나는 거울에게 물어본다 가고 있는 이 길이 옳은 길인지 거울은 늘 같은 대답이다 마음 정했으면 주저하지 말고 서두르지도 말고 당당하게 가란다 그렇게 걸어온 나에게 거울은 빛으로 말해준다 저녁노을 붉은 해처럼 이제 그만큼 갔으면 됐단다 하늘빛 따라 걸어온 인생길을 잠시 잊은 듯 돌아보면 어느새 나는 거울 속에 들어와 있다 거울 속에는 내 삶의 길이 있다 거울 속에는 하늘빛도 있다 2020. 9. 9. 민족의 미소 민족의 미소 -홍종흡- 천만년 지나도 이 아름다운 강산에서 들꽃으로 피어나려고 웃고 있는 내게 이유를 밝히라고 하니 무엇이라 말해야 할까 나는 잘 모른다 그저 천만년 지났어도 너만 보면 행복하단다 난 외치고 싶다 천만년 더 세월 지나도 항상 들꽃처럼 살자고 이제는 알겠다 아름다운 너의 얼굴은 우리 민족의 하얀 미소 던져 깨뜨려도 변함없이 웃는 얼굴은 우리 민족의 후덕한 미소~ 2020. 9. 7. 미소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0. 9. 3. 참새들의 외침 참새들의 외침 -홍종흡- 붉게 익어가는 고추밭에서 온종일 맴돌던 고추잠자리 지친 듯 장대 끝에 앉아 가을바람에 날개를 식히는데 밭에서도 논에서도 들려오는 참새들의 배고픈 울음소리 살던 집마져 장마에 떠내려가 앞으로 살아갈날이 걱정이다 가을이 와도 희망은 오지 않고 발길 끊어진 방앗간에도 떨어진 낟알 하나 없으니 참새들은 어찌 살아야 하나 나라님은 걱정도 안 되나 보다 푸른 집 넓은 대청마루에 누워 참새들의 고달픈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오수(午睡) 즐기니 하늘이시여, 조상님이시여- 午睡 즐기는 그 잘난 얼굴에 정신이 번쩍 들도록 분(糞) 가루 한 사발 뿌려주소서~! 2020. 8. 25. 바람 부는 날 밤에는 바람 부는 날 밤에는 -홍종흡- 해 지고 엷은 달빛으로 까만 밤 되더니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산뜻한 느낌이 내 몸을 잡아 일으킨다 아무리 눈을 뜨려 해도 떠지지 않는 눈 몸이 풍선처럼 떠올라 바람에 업혀 창 밖으로 긴 여행 떠난다 당도한 곳은 내 고향집 누나가 반가운 미소로 엄마가 팔 벌려 지친 나를 꼭 안아준다 너무나 반가워 부르는 볼멘소리 엄마~! 허우적거리다 깨어나니 까만 밤이 엷은 빛깔로 새벽을 맞는다 바람 부는 날 밤에는 늘- 그리움이 눈가를 적신다 2020. 8. 23. 바람 부는 날 밤에는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0. 8. 17. 엄마의 강 엄마의 강 -홍종흡- 달빛 속에는 엄마의 강이 있다 낮에는 하얀빛으로 흐르다가 밤이면 두고 온 아이들 못 잊어 슬픈 듯 검푸른 빛으로 흐른다 먼 옛날에 엄마는 떡갈나무 나룻배에 아이들을 태워 강을 건넸다 나는 긴 세월 강을 건너면서 온갖 삶의 시련을 낚았다 더러는 행복을 낚기도 했지만 이제는 늙어 더는 낚을 수 없기에 병풍처럼 접힌 삶의 세월을 한 겹마저도 접힌 채 남겨두고 엄마의 강으로 돌아가고 싶다 엄마의 강에는 아름다운 노래가 물결처럼 흐른다 나를 감싸 안아 잠들게 하는 엄마의 자장가 소리가 들린다 하얀 미소 엄마의 얼굴이 보인다 2020. 8. 16. 엄마의 강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0. 8. 13. 비야 비야 비야 비야 -홍종흡- 비야 비야 어서 오려무나 아주 오래전부터 기다렸는데 이제야 너를 만나니 반갑구나 온 동네 가리지 말고 적셔주렴 모두가 말라 먹을 물도 없단다 늦게라도 내리니 참 고맙구나 비야 비야 이제 그만 오렴 너무 많이 내려 살 수가 없단다 참았다가 보름날에 또 오려무나 옛 부터 조상님들도 너를 반겨 네가 잊지 않고 찾아오는 날에는 동네방네 큰소리로 알렸단다 비 오신다~! 비 오신다~!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 멍석 걷어라 어서 나가 논두렁에 물꼬 터놔라 네가 먼길 돌아 찾아오는 날이면 온 동네가 풍년가를 부르다가 네가 가지 않으면 슬픔에 젖는단다 비야- 비야- 사랑하는 비야- 이제 그만 멈추어다오 이제 그만 돌아가다오- 2020. 8. 9. 비야 비야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0. 8. 8. 시래기 선짓국 시래기 선짓국 -홍종흡- 더위에 지쳤는지 시장기도 없고 먹고 싶은 것도 없다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장맛비에 누울만한 곳도 온통 눅눅하다 한 달 동안 먹고살라는 생계비가 동전 몇 개 합쳐 삼천 원 좀 남았다 국수 한 묶음 사면 한 삼일 먹는데 끼니때마다 먹으려니 질린다 오늘은 오일장이라니 국밥집 가서 삼천 원짜리 시래기 선짓국이나 먹고 오백 원에 막걸리 한잔 그냥 주면 받아 마시고 편하게 잠들고 싶다 내일이 오지 않은들 무슨 상관있나 차리리 안 오면 더 좋겠다 천년 만년지나 다시 밝아오면 그때에는 나도 다시 피어나고 싶다 아름답고 작은 꽃으로ㅡ 2020. 8. 2. 시래기 선짓국 시래기 선짓국 -홍종흡- 더위에 지쳤는지 시장기도 없고 먹고 싶은 것도 없다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장맛비에 누울만한 곳도 온통 눅눅하다 한 달 동안 먹고살라는 생계비가 동전 몇 개 합쳐 삼천 원 좀 남았다 국수 한 묶음 사면 한 삼일 먹는데 끼니때마다 먹으려니 질린다 오늘은 오일장이라니 국밥집 가서 삼천 원짜리 시래기 선짓국이나 먹고 오백 원에 막걸리 한잔 그냥 주면 받아 마시고 편하게 잠들고 싶다 내일이 오지 않은들 무슨 상관있나 차리리 안 오면 더 좋겠다 천년 만년지나 다시 밝아오면 그때에는 나도 다시 피어나고 싶다 아름답고 작은 들꽃으로 ㅡ 2020. 8. 1. 제행무상(諸行無常) 제행무상 -홍종흡-제것 아니라고 막 퍼주는 선심성 고약스러운 인심에 자네는 받지 않아도 살 만 한 형편인데도 백 섬 채우려 받으려 하는가 행여 저 세상으로 가거들랑 남아있는 가련한 중생들에 파 뿌리 하나만이라도 크게 선심 써 내려주면 그 뿌리 잡고 천국에 가겠네 무슨 미련에 무슨 욕심인가 한줌의 재로 끝나 뿌려지면 누구도 기억 못 할 텐데 자네를 향한 마지막 노래 내가 불러줄테니 들어볼 텐가 상위에 진수성찬 가득 차린들 극락왕생 축원 기도를 올린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길인 것을 남은 욕심일랑 모두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길 떠나보세- 2020. 7. 23. 이전 1 ··· 5 6 7 8 9 10 11 ··· 15 다음